
전 세계에서 온 헤아릴 수 없는 무게의 철강 제품과 고철이 오가는 하역 현장, 그 한복판에서 30년을 버텨온 사람이 있습니다. 포항항8부두운영 포항항만사업팀 박동수 기능은 선박이 들어올 때마다 가장 먼저 현장을 살피고, 작업이 끝나는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킵니다. 화려한 수식어도, 자신을 드러내는 자랑도 없지만 동료들은 그를 가리켜 ‘팀의 중심’이라 입을 모읍니다. 올해로 근속 30년을 맞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박동수 기능의 하루는 출근과 동시에 시작되는 회의로 문을 엽니다. 선박 입항 스케줄, 장비 투입 여부, 화물 상·하차 계획까지 팀원들과 세밀하게 짚어나간 뒤, 안전 조끼와 헬멧을 챙겨 들고 선박이 정박해 있는 항만으로 나섭니다.
포항항만에 배치된 LLC(레벨 루핑 크레인) 2대와 HMC(하버 모빌 크레인) 1대를 오가며 그가 살피는 것은 단순한 기계 상태만이 아닙니다. 크레인에 장착된 그라브(집게 장치)의 너트 풀림 여부, 실린더 이상, 케이블 마모, 선박을 오르내리는 현문 사다리의 체결 상태, 그리고 하역이 끝난 현장의 정리 정돈까지 꼼꼼히 확인합니다. 수십 년간 몸에 밴 감각으로 현장 곳곳을 두루 챙기는 것 또한 그의 몫입니다.
“현장은 언제 어디서든 위험합니다. 화물이 가득 찬 비좁은 선내에서는 늘 긴장해야 하죠. 크레인으로 들어 올리는 화물도 기본이 8톤씩 되다 보니, 항상 안전을 확인하고 작업자들에게도 계속 위험을 상기시켜야 합니다. 몇 번이고 확인해야 마음이 놓이고, 그제야 다음 작업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맡은 조의 선임으로서 주야간 교대 근무 체계 속에서 그는 항만 하역 노조 작업원들의 안전 관리까지 담당하는 ‘안전지킴이’ 역할을 겸하고 있습니다. 신호대 위에서 안전 고리를 체결하지 않은 작업원을 발견하면 즉시 다가가 교정하고, 덤프트럭이 접근하는 반경 안에 안전 구역을 설정하는 일 모두가 그의 손을 거칩니다.

박 기능이 가장 보람을 느끼는 때는 화려한 표창을 받을 때가 아니라, 작업이 끝난 뒤 배가 정해진 시간 안에 무사히 출항하는 순간입니다. 대형 화주사의 선박이 입항하면 상당한 작업량이 주어지기 마련입니다. 항만 혼잡, 시설 부족, 기상 등의 변수까지 고려하며 주어진 작업을 안전하게 마무리하는 일은 팀 전체의 협심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그는 늘 먼저 앞장서 작업 계획을 세우고 위험성 평가를 거친 뒤, 팀원들과 장비 배치 시뮬레이션을 거듭합니다. 그 와중에도 기존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이렇게 하면 어떨까, 저렇게 바꿔보면 어떨까’라며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것이 그의 방식입니다.
“바둑을 두다 보면 틀에 박힌 사고를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늘 하던 방식 말고 방향을 한번 비틀어보는 것이죠. 직원들이 저를 조금 다르게 보는 면이 있다면 아마 그 부분 때문일 것입니다.” 수만 톤의 철강 제품 수출이 단 한 건의 안전사고 없이 마무리될 때의 성취감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이런 이름 없는 순간들의 축적 되어 지금의 그를 만들었습니다.
올해 7월이면 입사한 지 꼭 30년이 됩니다. 처음 입사했을 때 그는 ‘샤클(Shackle)’이나 ‘후쿠(Hook)’가 무엇인지조차 몰랐다고 합니다. 메모장을 꺼내 하나하나 적을 때마다 선배들은 그 습관을 기특하게 여기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제 세월이 흘러 그는 무언가를 가르쳐 주는 든든한 선배가 되었습니다.
후배를 대하는 그의 교육 방식은 단순하지만 확실합니다. 한 번 알려주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제대로 이해했는지를 확인하며 이해할 때까지 반복합니다. 지시하거나 다그치는 대신 직접 시범을 먼저 보입니다. “제 할 일을 묵묵히 하면 후배들도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모범을 보인다기보다는 솔선수범하는 것이죠. 가정에서도 부모가 하는 것을 보고 자녀들이 배우듯 현장도 다르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허물없는 선배가 되고자 항상 노력합니다. 어느 날 한 후배가 “힘든 일이 있어도 우리 팀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일할 맛이 난다”라는 말을 건넸을 때, 박 기능은 그 말에 오히려 큰 고마움을 느꼈습니다. “내가 소임을 다하고 있는지 스스로 의문이 들 때가 있는데, 그 한마디를 듣고서야 ‘내가 제 몫은 하고 있구나’ 싶었습니다. 같이 일하는 동료가 그렇게 생각해 주었다는 것 자체가 정말 고마운 일이죠.”

히어로 선정 소식을 들었을 때는 당황스러움이 앞섰다고 합니다. “저보다 훌륭한 분들이 많은데”라는 말이 입에서 먼저 나왔을 정도입니다. 30년을 현장에서 일했어도 자신을 특별히 드러내는 일에는 여전히 어색해합니다. 하지만 팀원들의 생각은 다릅니다. 늘 묵묵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고, 새로운 시도를 제안하며,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선임. 그런 사람이 팀 전체의 기준점이 되고 나아가 현장의 문화가 된다는 것을 동료들은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의 목표를 묻는 질문에 그는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었습니다. 현장의 세밀한 안전 포인트를 후배들에게 더 꼼꼼히 전수하고 싶다고, 그리고 안전 교육 커리큘럼을 체계적으로 만들어두고 싶다고 말입니다. 30년 경력의 끝자락에서도 그의 시선은 여전히 현장을 향해 있습니다.
“안전사고 없이 작업을 마무리할 때가 가장 기분 좋습니다. 저에겐 그게 전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