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근콘크리트가 등장하기 전, 인간은 나무나 돌, 흙 등 자연의 재료로 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나무집은 우리에게 낯선게 아니죠. 지금도 수백년 전에 지은 목조건축 유적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철근콘크리트가 등장한 이후로 ‘나무집’은 조금 낯설어졌습니다. 콘크리트보다 강도가 약하고, 또 불이 잘 붙고, 금세 타버리기 때문에 안전하지 않다는 인식이 앞서고 있죠. 정말 그럴까요? 최근에 이런 우려를 불식시킬 ‘나무집’들이 전세계 곳곳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10층 이상의 건물을 지어 올리기도 합니다.
이런 ‘높은 나무집’ 건설을 가능케 한 것은 CLT(Cross laminated Timber)라고 하는 신소재입니다. 쉽게 말해 합판과 유사한 구조용 집성판으로, 가늘게 쪼갠 목재를 한층씩 90도 엇갈리게 교차시켜 접착, 압축한 자재입니다.유럽에서 개발된 공법으로, KLH라는 오스트리아 회사에서 1995년경 처음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뭇결을 직각으로 교차해 목재의 단점인 수축, 팽창으로 인한 휨이나 뒤틀림을 개선해 원목에 비해 강도를 많이 높였습니다. 철의 2배, 콘크리트의 9배의 강도로 알려지기도 했죠. 뛰어난 강도 덕분에 이전엔 시도하지 못했었던 ‘고층 목조 건물’ 등장에 일조했습니다. 또, 나무이기 때문에 철근콘크리트 대비 탄력이 있고 유연하며 가볍습니다. 철근 콘크리트 대비 1/5 이하의 무게(CLT: 0.5 t/㎥ 철근 콘크리트: 2.4 t/㎥)로 지진 등 자연재해에 강하며 재료 수송비 등도 절감할 수 있습니다.
나무판을 겹쳐 생산하는 방식으로 크기나 길이에 대한 제한 없이 원하는 형태로 다양한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것도 장점입니다. 나무결이 그대로 노출되기 때문에 구조재이자, 마감재로도 사용할 수 있죠. 우드 컨셉의 인테리어에 바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또, 생산, 사용, 폐기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의 양이 철근콘크리트 대비 아주 적기 때문에 친환경 재료로도 각광 받는 중입니다.
또 다른 장점은 속도입니다. 철근콘크리트 건물의 PC공정과 유사하게 공장에서 생산된 CLT 자재들을 옮겨와 현장에서는 조립만 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소요되지 않는 것이죠.
이렇게 좋은 소재이지만, 도입 확산을 위해 극복해야 할 과제들이 있습니다. 첫번째로 경제성입니다. 아직 신소재에 가깝기 때문에 생산하는 곳도, 설계가 가능한 곳도 많지 않아 비용이 많이 듭니다. 일부 임업이 활성화 된 나라들에서는 인센티브를 통해 건축을 장려하기도 하는데요. 이런 부가적인 조치 없이 활성화 되기는 아직 어려운 환경입니다. 또, 나무 자체가 소리가 통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방음 및 층간소음에 취약하죠. 우리나라와 같이 공동주택 위주의 생활환경에서는 보완이 많이 필요한 자재입니다. 외부 오염물에 의해 외관이 쉽게 오염될 수 있고 개미 등 곤충으로 인해 내구성이 심하게 저하될 수 있어 후처리 등이 반드시 필요한 것도 주의해야 할 점입니다.
CLT 등의 도입과 함께, 목조 건축물에 대한 높이 규제가 조금씩 완화되며 고층 건물이 등장할 수 있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목조 건축물의 안정성, 내화성 등의 문제로 각 나라에서는 목조건축물의 최대 높이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내화성이란 건물에 불이 붙었을 때 얼마나 오랫동안 하중을 지지할 수 있는지를 의미하는데요. 건물 내에서 불이 났을 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대피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고층 건물을 지을 때 필수적으로 고려되어야 하는 기준입니다. CLT의 경우 1000도 이상이 되었을 때 겉부분은 탄화되지만, 안쪽의 경우 오히려 열 전도율이 낮아 건물 구조가 무너지지 않는 것을 입증했습니다.
국내의 경우 2020년까지 목조 건축물의 최대높이를 18m까지로 제한했지만, 현재 그 제한 규정이 폐지된 상태이고, 규정 대신 층수별로 별도의 내화성 기준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4층의 경우 1시간 내화성능, 5시간 이상은 2시간의 내화성을 확보해야 합니다. 미국도 2021년부터 적용되고 있는 국제건축법(IBC)의 일부로, 약 7층 높이인 26m(85피트)로 제한되어 있던 최대 높이를 18층까지 올렸습니다. 현재 이 기준은 미국 내 8개 주에서 부분적으로 채택되고 있습니다.
2017년 완공된 캐나다 브리티시 대학(UBC)의 기숙사 톨우드타워는 지상 18층, 53m 높이로 완공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목조 건물로 이목을 끌었습니다. 엘리베이터실과 계단실, 그리고 수도관 등이 위치한 2개층의 기초구조를 제외하고 17층의 목조 구조를 쌓아 만들었습니다. 18층을 짓는데 총 9.5주밖에 소요되지 않아 더욱 관심을 받았죠. 건물에 사용된 목재가 흡수하고 있는 이산화탄소는 자동차 511대가 1년동안 내뿜는 양에 해당하며, 철근콘크리트 대신 목구조를 사용해 2,432미터톤 이상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임업으로 유명한 노르웨이의 브루문달 지역에 위치한 미에스토르네는 지상 18층, 높이 85.4m의 주거+호텔 복합건물입니다. 공사현장에서 15km 떨어진 제재소에서 만든 CLT를 사용해 지어 자재 이동에 따른 이산화탄소 배출도 최소화했습니다.
전국토의 47%가 산림인 오스트리아는 유럽의 대표적인 임업강국이자, CLT가 처음 개발된 곳이기도 합니다. 호호빌딩은 총 24층 높이, 84m의 목조 건축물로 전체의 76%가 나무로 지어졌습니다. 하단 7층은 콘크리트, 상부 17층은 목구조로 되어있습니다.
2022년 7월에 완공된 밀워키의 Ascent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높은 목조건물입니다. 86.6m(284피트) 높이로, 엘리베이터와 계단실은 콘크리트 구조, 나머지는 CLT로 만들어졌습니다.
지금도 전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고층 목조건물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스위스에서는 2026년 완공 예정으로 100m가 넘는 목조 건축물을 준비하고 있으며, 일본에서도 프로젝트가 진행중입니다. 세계 최고층 목조건축물을 향한 경쟁은 앞으로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나무로 집을 지으면 탄소배출을 절감할 수 있고, 친환경적인 건 상식적입니다. 다만 걱정되는 부분이 있죠. 크고 길게 뻗은 나무를 베어 집을 짓는 것이 환경을 훼손하는 것은 아닌지, 산림자원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고 하네요. ‘건강한 숲’을 위해서는 적당한 벌목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입니다. 사람처럼 나무도 수령에 높아짐에 따라 대사작용이 떨어지기 때문에 너무 오래된 나무는 이산화탄소를 잘 흡수하지 못한다고 해요. 또, 너무 울창하게 자란 나무는 그늘을 크게 드리워 나무 근처에서 자라는 작은 식물이나 풀 등의 성장을 방해하기도 하고요. 따라서 크게 자란 나무를 벌목해 활용하고, 그 자리에 어린 나무를 심어 순환을 만드는 것이 건강한 숲을 만드는데 도움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