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삼표셀렉트

매년 단 한 명의 건축가에게만 전달되는 특별한 초대장, 서펜타인 파빌리온

2026-06-02

매년 단 한 명의 건축가에게만 전달되는 특별한 초대장, 서펜타인 파빌리온

지난 26년간 영국 런던 중심부 하이드 파크(Hyde park)의 서쪽, 켄싱턴 가든(Kensington Gardens)에 위치한 서펜타인 갤러리(Serpentine Gallery) 앞 잔디밭에서는 전 세계가 주목하는 획기적인 건축문화 프로젝트가 이어져왔습니다. 매년 6월 무렵 새로운 파빌리온이 설치되어 갤러리의 야외행사와 시민들의 휴식처로 쓰이다가, 10월이면 흔적도 없이 해체되는 이 프로젝트는 ‘현대 건축의 실험실’이라 불리며 예술과 건축의 경계를 허물어왔죠.

2000년부터 이 행사를 주최해온 서펜타인 갤러리 측은 해마다 잠재력과 재능을 인정받고 있는 건축가 단 한명(또는 한 팀)만을 초청해 파빌리온 설계를 의뢰하는데요. 분명한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영국 내에서 건물을 완공한 경험이 없는 건축가여야 한다는 것이죠. 이 덕에 초대받은 건축가들은 영국에 없던, 가장 파격적이고 자유로운 설계를 통해 건축과 미래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건축가들을 발굴한 현대 건축의 실험실

Serpentine Gallery Pavilion 2000 Designed by Zaha Hadid (19 June – 3 September 2000) Photograph © 2000 Hélène Binet

서펜타인 파빌리온의 시작은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서펜타인 갤러리는 후원금 마련을 위해 야외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고, 건축가 자하 하디드(Zaha Hadid)의 설계로 삼각형 구조를 활용한 비정형 작품을 세웠죠. 가벼운 철골 구조물에 흰색 패브릭을 덮은 텐트 형태였는데, 유려한 곡선의 리듬감과 구조적 경량성을 반영한 미래지향적인 공간이었습니다. 이 독특한 형태의 구조물이 사람들의 큰 관심과 호응을 얻자, 갤러리 측은 원래 철거 계획을 변경해 가을까지 사용하게 됩니다.

Serpentine Gallery Pavilion 2000 Designed by Zaha Hadid (19 June – 3 September 2000) Photograph © 2000 Hélène Binet

이 작품이 좋은 평가를 받게 되면서, 특정 목적으로 일부 기간만 설치되는 임시건축물을 의미하는 ‘파빌리온’ 개념이 유럽에 널리 퍼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죠. 예상 밖의 대성공을 거둔 서펜타인 갤러리는 이후 세계적인 건축 거장들을 미리 선정해 6개월 내에 파빌리온을 완공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그 완성작을 3개월간 일반에 공개하는 방식의 서펜타인 파빌리온 프로젝트를 매년 진행하기로 결정하면서 그 전통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26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 세계가 기다리는 건축 이벤트이자 국제적인 연례행사로 견고히 자리매김한 서펜타인 파빌리온은 그간 수많은 신진 건축가들을 발굴하고, 현대 건축의 흐름을 이끄는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건축가들을 양성해왔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간 서펜타인 갤러리의 초대를 받은 대표적인 건축가들로는 일본의 이토 도요(Ito Toyo)와 건축 그룹 사나(SANAA), 후지모토 소우(Fujimoto Sou), 브라질의 오스카 니마이어(Oscar Niemeyer), 네덜란드의 렘 콜하스(Rem Koolhaas), 미국의 프랭크 게리(Frank Ghery), 프랑스의 장 누벨(Jean Nouvel), 스위스의 페터 춤토르(Peter Zumthor)와 헤르조그 & 드 뫼롱(Herzog & de Meuron), 포르투갈의 알바로 시자(Alvaro Siza), 덴마크의 비야르케 잉겔스(Bjarke Ingels)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지금은 이름만 들어도 그 명성을 짐작할 수 있는 거장들이지만 이들 중에는 렘 콜하스의 경우처럼 서펜타인 파빌리온 프로젝트를 계기로 초기에 유명세를 얻거나, 프란시스 케레(Francis Kere)처럼 획기적인 디자인을 선보인 젊은 건축가들을 세계 건축의 주류 무대로 데뷔시킨 사례들도 다수 존재합니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에 초청된 건축가들의 경우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으나 파격적인 아이디어를 극대화하는 실험적 작업 성향을 가진 젊은 건축가들이 대부분이었다는 점에서 서펜타인 파빌리온이 지향하는 건축적 방향성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재료와 구조, 형식적 관점에서 과감한 시도를 이어온 서펜타인 파빌리온의 역사

매년 서펜타인 파빌리온 프로젝트에 초대된 건축가는 이곳에서 자신만의 건축 어휘를 자유롭게 실험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는 만큼, 건축과 예술이 결합한 공공 건축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해 많은 고민과 노력을 기울입니다. 서펜타인 파빌리온 자체를 가장 실험적인 플랫폼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는 것이죠. 지금까지 서펜타인 파빌리온을 설계한 대부분의 건축가들은 의외의 건축 재료와 형식을 과감하게 시도하거나, 기존의 건축 스타일에 반기를 드는 대담하면서도 감각적인 작품을 선보이는 일에 망설임이 없었습니다.

Serpentine Gallery Pavilion 2002 designed by Toyo Ito and Cecil Balmond with Arup, Serpentine Gallery, London (12 July – 29 September 2002) Photograph © 2002 Sylvain Deleu

그 중 하나가 2002년 이토 도요가 수학적 알고리즘과 기하학을 접목해 비정형 건축을 실현해온 영국의 구조공학 전문가 세실 발몬드(Cecil Balmond)와의 협업을 통해 완성한 작품입니다. 이들은 기존의 직각적인 건축 형태에서 벗어나 알고리즘을 통해 철저히 계산된 불규칙한 선들이 삼각형 혹은 사각형의 패턴을 반복하며 외부 공간과 연결되는 획기적인 디자인을 선보였는데요. 주변의 자연 환경을 모두 수용하는 투명하고 개방적인 공간을 연출하기 위해 체커보드 패턴을 활용한 외부 표면은 가벼운 알루미늄판과 유리를 사용함으로써 안과 밖의 경계가 없는 독특한 구조를 완성했습니다. 이는 초기 서펜타인 파빌리온 중에서도 가장 혁신적인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Serpentine Gallery Pavilion 2005 Designed by Álvaro Siza, and Eduardo Souto de Moura with Cecil Balmond and Arup, Serpentine Gallery, London (2 July – 2 October 2005) Photograph © 2005 Sylvain Deleu

또한, 2005년 포르투갈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 거장, 알바로 시자와 에두아르두 소투 드 모라(Eduardo Souto de Moura)가 공동 설계한 목재 구조물 형태의 파빌리온 역시 빼놓을 수 없습니다. 기존의 파빌리온 위치를 살짝 벗어나 갤러리 바로 앞에 세워진 이 작품은 얇은 목재(Timber)를 주재료로 활용한 격자형의 가벼운 구조를 보여주고 있는데요. 특히, 경쾌하면서도 유려한 곡선미가 돋보이는 켄틸레버(Cantilever) 구조의 캐노피를 지면과 비스듬하게 배치하는 등 여러 모로 새로운 공간감을 시도한 점과, 당시에도 기술적으로 매우 높은 완성도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는 작품입니다.

한편, 26년의 서펜타인 파빌리온 역사 속에서 유일하게 미완의 작품으로 남은 경우도 존재합니다. 2004년 설계자로 선정된 네덜란드의 건축사무소 MVRDV는 갤러리를 파빌리온 안으로 끌어들인다는 목표 하에 기존 갤러리 건물 위에 거대한 인공의 산을 만들어 공간 전체를 덮어버리는 매우 대담한 디자인을 제안했는데요. 하지만 작업 규모가 지나치게 방대하고, 구조적·기술적으로도 매우 복잡할 뿐만 아니라 예산 범위를 초과한다는 이유 등으로 인해 실제로는 건설되지 못한 채 설계안으로만 남게 되었습니다. 이에 2004년 서펜타인 갤러리는 여름 내내 파빌리온이 없는 상태로 시즌을 보내는 쓸쓸한 경험을 해야 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서펜타인 파빌리온의 역사는 올해로 26년째를 맞았지만 완성된 작품 수로만 계산해 올해를 25주년으로 보는 시각이 더 우세하게 되었습니다.

 

한시적으로 존재했다 사라지는 건축물이 지속가능성을 설계하고 실현하는 방법

이처럼 구조와 형식적 측면에서 다양하게 시도된 건축적 실험과 함께 우리가 또 하나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서펜타인 파빌리온이 가진 임시성입니다. 그간 서펜타인 파빌리온은 짧은 시간 머물다가 사라지는 건축이 더 큰 인상을 남길 수도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해왔는데요. 이에 많은 건축가들이 일정 기간만 존재했다가 사라지는 파빌리온의 특성을 고려해 재사용이 가능한 재료나 조립 및 해체가 쉬운 구축 방식을 모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파빌리온의 시공과 철거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을 줄여 지속가능성을 높이겠다는 강한 의지에서 비롯된 현상입니다. 단순한 소모품으로 여겨지기 쉬운 파빌리온을 마래지향적 관점에서 새롭게 접근하게 된 것입니다.

Serpentine Galleries Pavilion 2014 designed by Smiljan Radić Serpentine Gallery, London (26 June – 19 October 2014) Photograph © 2014 Iwan Baan

칠레 출신의 건축가이자 올해 프리츠커상 수상자로 선정된 스밀리안 라딕(Smiljan Radic)이 2014년 설계한 파빌리온은 14톤에 달하는 거대한 바위 위에 주로 선박 제작에 사용되던 얇고 가벼운 유리섬유 강화 플라스틱(FRP)을 올린 알 껍데기 형태의 초경량 구조물이었는데요. 무거운 돌이 상징하는 원시적인 자연과, 얇고 반투명한 유리섬유가 가진 인공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성질을 대비시키며 재료의 경계를 허문 것은 물론, 두께가 13mm에 불과한 소재의 특성을 이용해 이동 및 해체까지 용이하도록 제작되었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Serpentine Gallery Pavilion 2014 designed by Smiljan Radić. Photograph © 2014 Jim Stephenson

실제로 이 작품은 전시 기간이 끝난 이후 런던 근교에 위치한 하우저 앤드 워스(Hauser & Wirth) 갤러리 정원으로 옮겨져 현재까지도 휴식 및 이벤트를 위한 공간으로 재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2017년 프란시스 케레(Francis Kéré)가 선보인 작품은 목재 블록을 모듈화하여 현장에서 빠르게 설치할 수 있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어 조립과 분해가 모두 용이하다는 특징과 함께, 중앙부로 갈수록 낮아지는 깔때기 형태의 캐노피를 이용해 빗물이 모이도록 하고 이를 다시 활용하는 등의 지속가능한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추세는 최근 들어 더욱 두드러지는데요. 2023년 프랑스의 건축가 리나 고트메(Lina Ghotmeh)가 설계한 ‘아 타블르(À Table)’라는 작품 역시 지구와 생태적 관계를 고려해 친환경 저탄소 소재인 목재를 사용했고, 환경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조립과 해체가 모두 용이한 모듈식 구조로 설계되었다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건축과 예술 사이에서 끊임없이 시도되는 젊은 건축가들의 파격적인 발상과 행보

지난 2024년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조민석 건축가가 서펜타인 갤러리의 초대를 받아 ‘군도의 여백 (Archipelagic Void)’이라는 작품을 선보인 바 있습니다. 이 작품은 크기와 형태가 각기 다른 다섯 개의 공간(갤러리, 티 하우스, 도서관, 놀이터, 강당)이 군도(섬)를 이루며 중앙에 위치한 원형의 빈 공간을 방사형으로 감싸는 독특한 구조로 설계되어 있는데요. 이는 우리나라 전통 한옥의 마당을 재해석한 것으로서, 여백으로 가득한 중앙 공간이 각각의 개별적인 공간들을 유연하게 연결하며 자유롭게 교류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담당하도록 했습니다. 목재 중심의 골조를 바탕으로 텍스타일 소재를 활용해 가볍고 실용적인 공간을 완성했고, 분산과 집중이라는 두 가지 구조를 통해 공유 공간의 새로운 해석과 확장성을 동시에 보여주었습니다.

Serpentine Pavilion 2025 A Capsule in Time, designed by Marina Tabassum, Marina Tabassum Architects (MTA). © Marina Tabassum Architects (MTA). Photo: Iwan Baan. Courtesy Serpentine.

파빌리온에 한국적 요소를 가미해 큰 호응을 얻었던 조민석의 바통을 이어받아 지난해 서펜타인 파빌리온의 설계자로 선정된 이는 방글라데시의 여성 건축가 마리나 타바숨(Marina Tabassum)이었습니다. 그녀는 기후와 지역적 맥락, 즉 장소성을 함께 반영한 ‘시간의 캡슐(A Capsule in Time)’이라는 작품을 선보였는데요. 은행나무 한 그루를 중심으로, 남북으로 길게 이어진 네 개의 곡선형 목재 캡슐 가운데 하나는 이동이 가능한 키네틱 구조로 설계되었습니다. 파빌리온 자체가 공간의 모든 움직임에 반응하고,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한 것이죠. 또한 전체 구조를 가벼운 목재로만 설계해 지속가능성을 높였고, 파빌리온을 둘러싼 반투명의 폴리카보네이트 패널을 날씨와 시간, 방문객들의 움직임에 따라 끊임 없이 변화하며 낯선 공간적 경험을 극대화하는 장치로 활용했습니다.

Serpentine Pavilion 2026 a serpentine, designed by Isabel Abascal and Alessandro Arienzo, LANZA atelier. Exterior view © LANZA atelier, Photo Iwan Baan, Courtesy Serpentine.

그리고 오는 6월 6일, 멕시코의 젊은 건축 스튜디오 ‘란자 아틀리에(LANZA atelier)’가 작업한 올해의 파빌리온이 공개를 앞두고 있습니다. 작품명은 원래 ‘뱀처럼 구불구불한’이라는 뜻을 가진 형용사이자 ‘굽이치는 벽’을 의미하는 건축 용어이기도 한 ‘서펜타인’ 그 자체인데요. 이는 갤러리 옆 인공 호수가 그려내는 곡선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물결치듯 리듬감 있게 배치된 벽돌 소재의 담장을 강조한 것입니다.

Serpentine Pavilion 2026 a serpentine, designed by Isabel Abascal and Alessandro Arienzo, LANZA atelier. Interior view © LANZA atelier, Photo Iwan Baan, Courtesy Serpentine.

굽이치는 곡선의 벽은 직선의 벽을 쌓을 때보다 벽돌 사용량이 적다는 점에서, 자원의 소비를 줄이면서도 최대의 효과를 발휘한 작품인 셈입니다. 특히, 담장과 담장 사이에 나무로 된 캐노피와 반투명 지붕을 설치해 빛과 공기가 내부로 스며들게 하는 등 공간을 시적으로 접근하려는 젊은 건축가의 접근 방식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이처럼 25주년을 맞이해 다양한 기념 행사와 함께 자하 하디드 재단(The Zaha Hadid Foundation)과의 특별 협력을 통해 건축적 혁신을 탐구하는 프로그램 등을 준비하고 있는 올해의 서펜타인 파빌리온은 6월 6일 일반 공개를 시작으로 폐막일인 10월 25일까지 이어질 예정입니다.

서펜타인갤러리, 서펜타인파빌리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