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현대 도시의 위생과 건강을 책임지는 핵심 인프라는 상하수도입니다. 발 아래 매설된 관망은 우리에게 깨끗한 식수와 생활용수를 공급하고, 사용한 물과 오수를 도시 밖으로 안전하게 내보내며 도시를 살아 숨 쉬게 하는데요. 여기서 말하는 수도는 깨끗한 물을 공급하는 상수도뿐 아니라, 생활하수와 오수를 모아 처리하는 하수도까지 포함합니다. 물을 들이고 내보내는 두 시스템이 함께 작동할 때 비로소 도시는 위생과 건강을 유지할 수 있죠.
세계보건기구(WHO)는 1986년부터 ‘건강 도시’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위생 인프라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UN의 지속가능개발 목표(SDGs) 여섯 번째 항목 역시 식수 및 위생 시설에 대한 보편적·공평한 접근성 확보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상하수도가 단순한 편의 시설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과 도시의 지속 가능성을 지탱하는 기반임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이 시스템은 어떻게 발전해 온 것일까요? 수도(水道)의 역사와 변천사를 함께 따라가 봅니다.
인류의 오래된 물 관리 기술 가운데 대표적인 사례는 고대 페르시아의 ‘카나트’입니다. 카나트는 산지나 고원의 지하 대수층까지 수직으로 우물을 뚫고, 완만한 경사의 지하 터널을 통해 물을 저지대의 마을과 농경지로 보내는 방식이었습니다. 지하를 통과하기 때문에 사막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도 증발 손실을 줄일 수 있었고, 별도의 동력 없이 중력만으로 물을 이동시킬 수 있었습니다. 건조한 지역에서 안정적으로 물을 확보하기 위한 고대의 지혜였던 셈입니다.

카나트(Qanat) 구조도, 출처: 위키피디아
도시 상수도 시스템의 출발점으로 자주 언급되는 것은 고대 로마의 수도 시스템입니다. 기원전 312년 완공된 최초의 로마식 수도 ‘아피아 수도교’는 총 16.6km로, 수온 상승과 증발을 막기 위해 대부분 지하 갱도 형식으로 건설됐습니다. 이후 로마는 제국이 팽창하면서 지상 아치형 교량 구간과 지하 파이프 구간을 결합한 복합 수도 시스템을 완성했는데요. 덕분에 먼 곳의 수원을 도시까지 끌어와 구석구석 물을 공급하는 일이 가능해졌습니다.

로마 아피아 수도교
그러나 로마 제국이 멸망한 후, 대규모 상수도 시스템을 건설하고 유지할 행정력과 재정이 함께 사라지면서 수도 기술은 오랜 침체기에 들어섰습니다. 중세 시대에는 수도원이나 일부 도시에서 소규모 상수도를 운영했지만, 로마 시대와 같은 체계적 시스템은 쉽게 복원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16세기 말 런던에서 새로운 상수도 시스템이 도입되며 근대 상수도 기술이 점차 발전하기 시작했는데요. 1582년 네덜란드 출신 기술자 피터 모리스가 런던 브리지에 수차를 이용한 펌프식 상수도 시스템을 도입하며 템스강 물을 도시 곳곳에 공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오염된 강물로는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인구를 감당할 수 없었고, 1613년 사업가 휴 미들턴이 런던에서 약 68km 떨어진 하트퍼드셔의 깨끗한 수원에서 물을 끌어오는 인공 수로 ‘뉴 리버(New River)’를 완공하면서 비로소 장거리 상수도 사업의 가능성을 열어젖힐 수 있었습니다.

영국의 New River 수로
근대적 하수 시스템의 결정적 전환점 역시 19세기 영국 런던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산업혁명과 함께 도시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수많은 가정의 오물이 그대로 강에 흘러들었고, 우물은 오염되며 콜레라 같은 수인성 감염병의 온상이 되었습니다. 특히 1858년 여름, 쓰레기와 오수로 가득 찬 템스강이 한여름 태양 아래 발효되며 런던 전역에 극심한 악취를 퍼뜨렸는데요. 역사는 이를 ‘대악취(The Great Stink)’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강변에 자리한 의회에서 국회의원들조차 악취를 피할 수 없게 되자, 정부는 더 이상 하수 문제를 방치할 수 없었죠.
1859년부터 1875년까지 16년에 걸쳐 런던에는 6개의 주요 간선 하수도와 이를 연결하는 지선 하수도가 건설됐습니다. 여기엔 3억 1,800만 개의 벽돌이 사용되었고, 당시로써 신기술이었던 콘크리트 공법도 도입해 견고히 만들었습니다. 또, 설계자인 조지프 배절제트는 당시 200만 명이던 런던 인구를 훨씬 웃도는 용량으로 건설하기 위해 하수 파이프 직경을 2배로 설계했는데요. 덕분에 런던은 이후 인구 증가에도 오랫동안 버틸 수 있었고, 여러 차례 보완하며 21세기까지 도시 기반 시설의 일부로 기능했습니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물을 공급하는 방식은 비교적 단순했습니다. 사람들은 우물이나 하천에서 물을 직접 길어 쓰거나, 물장수가 집마다 물을 배달하는 방식에 의존했는데요. 도시가 성장하고 인구가 늘어나면서 안정적이고 위생적인 물 공급의 필요성은 점점 커졌지만, 오늘날과 같은 근대적 수도 시설이 자리 잡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근대적 수도 시설의 첫걸음은 1880년 부산에서 시작됩니다. 일본 거류민들이 하천 상류의 물을 끌어 쓰기 위해 대나무관을 도입한 것이 그 시작이었고, 이후 나무통으로 바꾸어 도수 설비를 정비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제도적으로 상수도 시스템을 구축하기 시작한 것은 1903년, 고종 황제가 미국인 사업가 콜브란과 보스트윅에게 상수도 부설 및 경영에 관한 특허를 허가하면서부터였는데요. 특허권은 1905년 영국계 회사인 ‘대한수도회사’에 양도되었고, 1906년 오늘날의 뚝섬 일대인 뚝도에 정수장 완속 여과지 공사가 착공됩니다. 당시 한강 물을 끌어들이는 수도관을 땅속에 묻는 공사 현장을 바라보던 사람들은 그 광경을 “조선 오백 년 역사에서 처음 보는 일”이라고 표현했다고 하니, 그 충격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2년에 걸친 공사 끝에 1908년 9월, 마침내 경성 시민들에게 수돗물이 공급되기 시작했습니다.

과거 뚝도 수원지, 출처: 서울시
이 최초 근대 상수도의 역사는 지금까지도 고스란히 보전되어 있는데요. 경성 시민에게 처음 수돗물을 공급했던 뚝도수원지는 현재 ‘수도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강자갈과 모래층을 통과시키며 물속의 부유물과 미생물을 걸러내는 초기 정수 방식인 제1정수장 완속 여과지를 실제로 만나볼 수 있습니다. 1908년 처음 설치한 5지(池)와 1938년 추가된 1지까지, 총 6지가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데요. 이곳은 국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이자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 제72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기도 합니다. 이 외에도 야외에는 1920년대부터 최근까지 수돗물 생산과 공급에 실제 사용되었던 상수도관, 기계류, 펌프류를 직접 볼 수 있습니다.

현재 수도 박물관, 출처: 서울시
한편, 서울의 하수도는 1410~1411년 조선 태종 시대 청계천 개수 정비를 진행하며 본격화했고, 근대적 하수 시스템은 1918~1940년 일제강점기를 거쳐 간선·지선 하수도가 구축되었습니다. 1954년 전쟁 복구 사업으로 하수도 개수가 재개되었고, 1976년 9월 청계천하수처리장을 최초로 준공하면서 하수도 시스템은 한층 더 발전하게 됩니다. 현재는 서울시 4개 물재생센터에서 서울 전역의 하수를 처리하고 있습니다.
수도관의 역사는 곧 소재의 역사로도 볼 수 있는데요. 시대마다 구하기 쉽고, 가공하기 좋으며, 당시 기술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재료가 관망을 채워왔기 때문입니다. 다만 상수도관과 하수도관은 요구되는 조건이 조금 다릅니다. 상수도관은 깨끗한 물을 안전하게 보내야 하므로 수질 안정성, 내압성, 부식 저항성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하수도관은 생활하수와 빗물을 흘려보내는 역할을 해 큰 단면과 내구성, 지하 매설 안정성이 핵심입니다. 이 차이 때문에 시대별 소재도 용도에 따라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고대 도시 배관의 상징적인 재료 중 하나는 납이었습니다. 로마에서는 도시 내 가정과 공동 수조를 연결하는 소구경 분배 배관에 납관이 주로 사용됐는데요. 납은 가공이 쉽고 자유롭게 구부릴 수 있어 복잡한 도시 배관망에 적합한 재료였습니다.
산업혁명이 시작된 19세기에는 주철관이 도시 상수도 본관 자재로 빠르게 자리를 잡습니다. 강도와 내구성이 뛰어나 대량의 물을 먼 거리까지 보내는 데 유리했기 때문입니다. 오수와 하수 배관에는 고온에서 구운 도기제 파이프, 즉 토관이 광범위하게 사용됐는데요. 토관은 내산성과 내부식성이 우수해 지하 매설 환경에 특히 적합했습니다. 런던 배절제트 하수도와 파리 근대 하수 터널은 벽돌과 초기 콘크리트 공법을 함께 활용해 시공됐고, 한국에서도 일제강점기부터 도입된 주철관과 철관 기반의 상수도 설비가 광복 이후까지 이어졌습니다.

흄관
20세기 들어 시멘트의 대량 생산 체제가 갖춰지면서 콘크리트관이 상하수도 분야의 주요 자재로 부상합니다. 그 중심에는 ‘흄관(Hume pipe)’이 있었는데요. 1910년 호주의 흄 형제가 고안한 흄관은 원통형 철망을 넣은 철제 형틀을 회전시키며 콘크리트를 투입하고, 원심력으로 치밀하게 다져 만드는 원심력 철근콘크리트관입니다. 강도가 높고 큰 지름으로도 제작할 수 있어 하수관, 배수관, 우수관 등 지하 기반 시설에 두루 쓰였습니다. 1960~70년대 빠른 속도로 도시화와 산업화가 진행되던 한국에서도 하수관로 확충이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는데, 이 과정에서 콘크리트관과 흄관은 하수도 기간시설을 확충하는 핵심 자재로 활약했습니다.
현대의 수도관은 닥타일 주철관, 폴리에틸렌관, 내충격 PVC관, 스테인리스관 등 한층 다양한 신소재로 진화했습니다. 이제는 전처럼 하나의 재료를 모든 관망에 일률적으로 적용하기보다, 용도와 매설 환경, 수압과 부식 조건, 시공성과 유지관리 특성에 맞춰 가장 적합한 재료를 선택하는 방식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수도는 보이지 않지만 도시를 건강하게 움직이는 힘입니다. 깨끗한 물을 들여오고, 사용한 물을 안전하게 내보내며, 그 물길을 견디는 관을 끊임없이 바꿔온 역사가 오늘의 도시를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수도꼭지를 틀면 당연하게 흘러나오는 물 한 잔 안에는 수천 년에 걸쳐 쌓아 올린 기술과 위생의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발 아래 묻혀 있어 눈에 띄지 않지만, 수도야말로 도시를 살아 숨 쉬게 하는 진짜 뼈대 중 하나가 되고 있습니다.